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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함 선생과 토정비결
관리자 조회수:419 183.107.202.158
2016-02-25 17:07:57
토정 이지함 선생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서 학자이면서도 기인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본관은 한산이고 호는 수산, 토정이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있어서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종류의 서적을 섭렵하였으며, 그러다 서경덕의 문하에 입문하여 서경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지함 선생이 역학, 의학, 수학, 천문, 지리에 해박한 것은 이때 서경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하여 정치에 입문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지함 선생의 인생의 생각을 몸소 실천하는 시기가 될 수 있다 하겠다.
 
이지함 선생은 정치에 입문한 후부터 거의 대부분은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지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때에 생긴 호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토정이었다.

이지함 선생은 관내의 어려운 사람들을 구휼하기에 평생을 바쳤으며 또한 백성들 뿐 아니라 길거리의 걸인들에게도 구휼의 손길을 내밀었다. 또한 이지함 선생은 학문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그 시대에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서로 다른 업을 상호 보충하는 단계까지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현대의 사람들은 토정비결로 인하여 이지함 선생이 무슨 큰 역술인으로 알고 있지만 역술인이라기 보다는 정치인이라고 해야지 맞다고 하겠다.

어찌 되었건 이지함 선생이 현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계기는 토정비결이라는 저서에 있기에 토정비결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을 연 토정비결은 이지함 선생이 역학과 천문에 밝다는 소문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찾아와 한 해의 운세를 알려달라고 사정을 하여서 이지함 선생이 저술을 한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지함 선생의 이름만을 택한 저서라는 설도 있다.

물론 어떤 것은 틀리고 어떤 것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면서 어느것이 맞고 어느것이 틀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토정 이지함 선생이 살아가면서 행한 행동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자신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며 자신의 위치에 자만하지 않고 겸손함과, 항상 탐구하고 노력하는 자세야말로 지금까지 이지함 선생을 잊지 않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하는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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